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고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과 학부모님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중학교 때는 전교권이었는데, 4등급이라니…” 충격에 빠진 아이들은 곧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를 찾아보며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아, 내신은 망했어. 나는 이제부터 정시 파이터다! 수능 한 방으로 역전하겠어.”
부모님 입장에서도 아이가 학교 시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수능 공부에만 집중하겠다고 하면,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까 싶어 동의해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냉정하게 말씀드립니다. 내신이 안 나와서 도피하듯 선택한 ‘정시 파이터’의 성공 확률은 10% 미만입니다. 내신 공부가 하기 싫어서 정시로 도망가는 것은, 전쟁터에서 총알이 무섭다고 지뢰밭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입시 컨설팅 현장에서 숱하게 목격하는 ‘수시 vs 정시’ 선택의 진실과, 망친 내신을 수습하는 현실적인 전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수시 납치? 아니, 수시는 ‘보험’이다: 내신을 끝까지 놓으면 안 되는 이유
많은 학생이 “수시 썼다가 덜컥 붙으면 수능 대박 나도 더 좋은 대학 못 가잖아요(수시 납치)”라고 걱정합니다. 죄송하지만, 이건 전교 1등이나 할 법한 행복한 고민입니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정시(수능) 시장은 재학생(현역)의 무덤이자 재수생(N수생)의 놀이터입니다.
수능 응시자 중 N수생 비율이 30%를 육박하고, 상위권 대학 정시 합격자의 60~70%가 N수생이라는 통계를 아시나요? 재학생은 학교 수업 듣고, 수행평가 하고, 동아리 활동 하느라 하루에 순수하게 수능 공부할 시간이 4~5시간도 확보하기 힘듭니다. 반면, N수생들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오직 수능 문제만 풉니다. 훈련량에서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신이라는 방패를 버리고 맨몸으로 정시판에 뛰어든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수시는 재학생끼리의 경쟁이지만, 정시는 전국의 입시 고인물들과의 경쟁입니다. 내신 4~5등급이라도 ‘인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을 노려볼 수 있는 수시 전형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수시는 납치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정시에서 실패했을 때 나를 받아줄 **’최후의 보험’**으로 남겨둬야 합니다.
2. 학년별 전략: 고1은 ‘무조건 챙기기’, 고2는 ‘선택과 집중’, 고3은 ‘마무리’
학년에 따라 고등 내신 관리 전략은 달라져야 합니다. 무작정 모든 과목을 다 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 고1: 내신 올인 시기 1학년 때는 단위 수가 높은 국어, 영어, 수학 등 공통 과목의 비중이 절대적입니다. 이때 받은 성적이 전체 내신의 40% 이상을 좌우합니다. 1학년 1학기를 망쳤다고요? 아직 1학년 2학기, 2학년, 3학년까지 5번의 학기가 남았습니다. 상승 곡선을 그리는 내신 그래프는 입학사정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패턴입니다. 포기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무조건 학교 시험에 올인하세요.
- 고2: 선택과 집중의 시기 2학년부터는 선택 과목이 늘어납니다. 이때부터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만약 전체 등급을 올리기 힘들다면, 내가 지원하려는 전공과 관련된 과목만큼은 1~2등급을 사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대를 희망한다면 국어 등급이 좀 낮더라도 수학과 물리는 무조건 챙겨야 합니다. 이것이 ‘수시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핵심입니다.
- 고3: 유종의 미 “3학년 1학기 내신은 버려도 되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3학년 과목은 대부분 진로 선택 과목이라 절대평가(A/B/C)인 경우가 많아 등급 따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여기서 성적을 확보해 두면 전체 평점을 꽤 올릴 수 있습니다. 끝까지 펜을 놓지 않는 태도 자체가 입시 역량입니다.
3. 생활기록부(세특) 관리 팁: 성적이 낮아도 전공 적합성으로 뒤집는 ‘학종’의 기회
내신 등급이 낮다고 수시를 포기하는 것은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거대한 기회를 발로 차는 것입니다. 내신 2.5등급인 학생이 1.8등급인 학생을 이기고 합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 비결이 바로 생활기록부 관리, 특히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입니다.
대학은 단순히 공부 잘하는 기계가 아니라, ‘우리 학과에 관심이 많고 열정적인 학생’을 뽑고 싶어 합니다. 내신 점수가 부족하다면 수업 시간에 발표, 토론, 보고서를 통해 이를 만회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내신이 4등급이라도 ‘확률과 통계’ 수업 시간에 **’사회 현상 데이터를 분석하여 마케팅 전략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다면, 경영학과나 사회학과 교수님은 이 학생을 주목합니다.
“성적이 낮으니까 생기부라도 채워야지”가 아니라, **”성적의 부족함을 생기부로 뒤집겠다”**는 전략을 가져야 합니다. 수행평가는 귀찮은 숙제가 아니라, 나의 전공 적합성을 어필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입시 컨설팅을 해보면, 생기부가 탄탄한 4등급이 생기부가 텅 빈 2등급보다 대학 레벨이 높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4. 정시 준비의 병행: 내신 공부가 곧 수능 공부입니다
많은 학생이 “학교 내신은 암기 위주라 수능이랑 스타일이 달라요”라고 말하며, 내신 기간에 수능 문제집을 풉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공부법입니다. 수능 출제 기관인 평가원에서조차 **”학교 수업을 충실히 들은 학생이 풀 수 있도록 출제한다”**고 매년 발표합니다.
내신 시험 기간 3~4주 동안 치열하게 교과서 개념을 파고들고,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을 암기하는 과정이 곧 수능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내신 국어 지문을 분석하는 능력이 수능 비문학 독해력으로 이어지고, 내신 수학 문제의 변형을 풀어내는 능력이 수능 킬러 문항 해결력으로 이어집니다.
현장에서 보면 2학년 때 내신 포기하고 자퇴하거나 정시 전문 학원 가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들의 90%는 실패합니다. 학교라는 강제적인 시스템 없이 혼자서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할 수 있는 의지력을 가진 학생은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 수능은 **EBS 연계율이 50%**입니다. 학교 내신 시험은 EBS 교재를 변형해서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학교 내신 준비가 가장 효율적인 수능(정시) 대비입니다.
결론: 입시는 ‘확률 게임’입니다. 카드를 미리 버리지 말고 끝까지 두 트랙을 유지하세요
대입은 누가 더 좋은 카드를 쥐고 있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카드를 살려두느냐의 확률 게임입니다. 고1, 고2 때부터 “나는 정시 파이터”라고 선언하며 수시라는 카드를 스스로 찢어버리는 것은, 6번의 기회(수시 6장)를 버리고 단 3번의 기회(정시 3장)에 인생을 거는 무모한 도박입니다.
내신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은 학교생활 안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세요. 수시와 정시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굴러가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내신 기간에는 내신에 집중하고, 방학 때는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기 위해 모의고사를 공부하는 ‘투 트랙 전략’만이 입시 성공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정공법입니다.
부모님, 아이가 정시로 도망가려 할 때 흔들리지 마시고 잡아주세요. “수능 대박은 내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치열함 끝에 오는 선물이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